View
동일시 없는 사랑의 번뇌라는 글을 충동적으로 쓰고, 또 계획에도 없었던 TRPG 글을 쓴 후에는 계획했던 글을 꼭 하나 써야겠다고 다짐하고 있었습니다. 주말에 관한 이야기를 먼저 하려고 해요. 주말 다들 잘 보내셨나요? 저는 토요일에는 긴박한 집과 여기공에서 주관한 공구·주택수리 체험 워크숍에 다녀왔고, 일요일에는 DOPE 요가 원데이 클래스에 다녀왔습니다. 주말 사이의 동선이 꽤 길었어요. 그리고 새로운 경험을 많이 한 새로운 몸이 되었습니다.
이민경 작가님이 온라인으로 열어 주셨던 『몸에서 뻗어내는 글쓰기 부산 특강』 중에 그런 이야기가 있었어요.
서사가 일종의 오솔길이라면 창작자는 오솔길 위를 달리는 자동차의 운전석에 앉아 적절한 타이밍에 핸들을 꺾을 줄 아는 사람이다. 독자는 조수석에 앉아 창작자가 보여 주는 풍경을 감상하는 자다. 독자는 서사의 진행에 관하여 이미 예상하는 바가 있고, 창작자는 그 예상을 충실하게 완수하는 게 아니라 적절하게 배신해야 한다. 바로 그 배신이 독자로 하여금 감상의 즐거움을 느끼게 한다.
이민경(2020), 몸에서 뻗어내는 글쓰기 부산 특강
공구와 요가 이야기를 하겠다고 선언한 게 있으니 어쩌면 이것도 예상치 못한 경로 진입일 수 있겠습니다. 제가 두 수업에서 공통으로 느낀 것도 바로 그 예상치 못했던 ‘핸들 꺾기’였거든요. 공구라고는 드라이버나 육각 랜치 정도가 전부였지, 전동 공구는 손에 쥐어본 적도 없었어서 저는 상당히 긴장한 상태로 테이블 앞에 앉아 있었어요. 그래도 실습에 앞서 PPT와 함께 진행되는 이론 수업에서 구체적인 지침과 기술을 알려 주실 테니까, 그걸 머릿속에 단단히 넣어야지. 그러면 실수하는 일은 없겠지. 암기 과목의 쪽지 시험을 앞둔 학생과 비슷한 열의를 품고 있기도 했습니다. 꼼꼼하게 외워서 외운 그대로 수행하겠노라고요. 그래서 여기공의 ‘인다’님 이야기는 아주 우아한 급커브가 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기술은 감각입니다. 내 몸을 움직이는 감각이에요. 내 몸이 어느 정도의 힘을 주고 있는지, 어느 강도의 진동을 경험하고 있는지, 어떤 리듬으로 움직이고 있는지 그걸 느껴야 합니다. 그다음이 원리와 사용에 대한 이해예요. 그런 다음에야 안전하다는 믿음이 생기고, 기술을 바탕으로 새롭게 만들고 고칠 거리에 대한 상상과 즐거움이 옵니다.
인다(2020), 공구·주택수리 체험 워크숍
기술은 감각입니다. 다시 읽어도 우아한 문장이지만, 저 이야기를 들은 후 전동 드릴을 들고 나무판에 드릴 비트를 밀어 넣으면서 몸으로 체감하던 때의 감각을 그대로 공유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작동 방식에 관한 설명은 물론 충분히 있었지만, 제가 생각하던 것과 같은 방식은 아니었어요. 비트를 몇 센티 깊이로 넣었다가 어느 정도의 속도로…… 하는 설명은 없었습니다.
대신 예상한 것처럼 공구가 움직여주지 않을 때면 “방금 꽉 죄는 것처럼 잘 안 들어가는 거 느꼈죠. 나무와 같이 자연물로 만들어진 재료들은 완전히 사라지기 전까지 나름의 움직임과 호흡, 특징을 가져요.” 같은 설명을 들을 수 있었고, 독일과 미국과 일본과 한국에서 만들어진 서로 다른 드릴들을 직접 들고 사용해볼 수 있었고, 힘이 더 필요한 타이밍을 적절하게 맞추었을 때 나무 사이로 드릴이 매끄럽게 파고드는 걸 팔과 어깨 전체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드릴에서 전해지는 진동이 드릴마다 어떻게 다른지, 진동의 1단이나 2단이 각기 어떤 소리를 내는지, 일부 드릴에 달려 있던 조명 유무가 내게 어떤 차이를 가져오는지를 눈과 귀와 피부로 느끼면서요.
네 개의 테이블에서 서로 다른 진동 소리가 동시에 혹은 엇갈려 나던 때 선생님은 소리만 듣고도 “그건 너무 빨라요.”라고 이야기하며 다가오시거나, “방금 소리 정말 부드러웠죠.”라고 멀리서도 칭찬해 주셨어요. “공구를 다루면서 진동이나 소음이나 불꽃을 보게 되면 원시적인 반응으로 흥분하게 된다.”는 말을 듣고는 다들 조용히 웃었던 것 같은데, 어느새 다들 설마 했던 흥분감 속에서 드릴과 목재를 붙들고 있어서 선생님이 웃으셨던 게 기억이 납니다.
생각은 내가 아니에요. 하지만 몸은 나예요. 우리는 이 둘을 자주 혼동하고, 과거나 미래의 생각에 골몰하느라 현재의 내 몸을 자주 놓칩니다. 생각이 떠오르고, 일렁이고, 출렁이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에요. 하지만 그 생각에 너무 깊게 빠지지 마세요. 내 몸을 지나쳐 흘러가도록 두세요. 그렇게 스스로에게 다정하게 말해주세요.
장진영(2020), DOPE YOGA 빈야사 LV.1 원데이 클래스
기술을 배우리라 생각했던 공구 수업에서 몸과 감각을 배웠던 반면, 몸에 관하여 배우리라 생각했던 요가 수업에서는 뜻밖의 기술을 배웠습니다. 코르셋을 벗은 자매들과 띄엄띄엄 섬처럼 놓인 요가 매트에 누워서 명상하던 때, 마찬가지로 디폴트 여성인 선생님께서 해주시던 이야기예요. 원주의 뮤지엄 산에 위치한 명상관에서 힐링 명상을 했을 때 온몸의 세밀한 감각에 집중하는 연습을 했던 것과 달리, 이번에는 아주 다른 방식으로 몸에 집중할 수 있었습니다. 내 몸을 스치는 생각들을 포착하고 그걸 놓아주는 ‘기술’로써 자유로워지는 몸으로요. 발산역을 내려갈 때는 다리가 후들거렸는데도 여러 세트 반복했던 동작은 그새 잊혀서, 기억만 단서 삼아서는 혼자서 하기 어려운 일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선생님이 가르쳐 주신 ‘기술’은 생활에 깊이 스며들었어요.
기술 대신 몸을 배운 수업에서는 마지막 과정으로 수업을 들으며 느낀 점을 공유하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저는 기술·가정으로만 기술을 접해보았고, 그것도 가정에 훨씬 편중된 수업으로 접했기에 비혼 여성 가구로써 공구에 관한 갈증이 항상 있었어요. 그렇게 참여하게 된 동기를 말했습니다. 그리고 느낀 점에서 저는 기술도 몸도 아닌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아까 말씀드렸던 것처럼 저는 상당히 긴장한 상태로 테이블 앞에 앉아 있었거든요. 그래서 2인 1조로 진행되는 실습에서 파트너가 되어주셨던 분이 먼저 드릴을 건네주셨을 때, (손에 쥔 게 밀워키였던 건 아주 나중에나 알았습니다.) “밀워키 드릴 어떤 것 같으세요?”하고 물어보셨을 때, 사실 정말 생각이 1도 없었습니다.
드릴에 비트를 끼우는 것부터 난관이었고, 낯선 사람과 식사할 때 음식이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모르겠는 것처럼 드릴에서 느껴지는 진동도 소음도 아득하게 멀게 느껴지는 상태였습니다. 저를 몸으로 잡아 이끌어주신 건 같이 실습한 파트너분이셨어요. “이건 아까 드릴에 비해 어때요?”, “세기를 높여 볼까요? 아까보다 낫지요?” 그분 입술에서 흘러나오는 물음표를 튜브처럼 붙들고 저는 점차 제 몸으로 돌아올 수 있었어요. 이건 정말로 가볍네. 아까보다 훨씬 부드럽다. 와, 이건 어깨까지 힘이 무겁게 들어가는구나. 그런 감각들과 함께요. 아마 그 목소리가, 그분이 없었더라면 ‘기술은 감각입니다’라는 문장을 그토록 체감할 수도 없었을 거예요.
앞으로 나도 무언가를 해낼 수 있을 것 같다는 용기를 느꼈다는 소감도 있었습니다. 모두의 소감에 하나하나 귀를 기울이신 후, 선생님은 자신이 배운 것으로부터 스스로가 용기를 가지고 한 걸음 나아가는 것뿐만 아니라 그런 배움과 용기를 다른 여성들과도 함께 공유해달라고 이야기하셨어요. 알게 된 것을 아직 모르는 자매와 공유하고, 생겨난 용기를 서로에게 불어넣어달라는 다정한 요청처럼 들렸습니다. 수업을 마치고 나오며 포스트잇에 오늘의 경험을 짧게 적어달라는 요청을 받았을 때, 그래서 저는 기술로 시작해 연대까지 이어지는 여정에 감사하다는 내용을 적었어요.
요가 수업에서는 조금 더 내밀하고 친밀한 형태의 연대를 느꼈습니다. 수업을 마치고 나오는데, 요가 매트에 띄엄띄엄 앉아 있을 때는 서로 친분이 있는 줄 몰랐던 분들끼리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하시더라고요. 오늘 수업이 어렵지는 않았는지, 할 만했는지 묻는 말에도 그 말에 성큼 뒤따라 나오는 대답에도 웃음이 곳곳에 묻어 있었습니다. 요가를 먼저 배운 친구가 다른 친구를 요가의 세계 안으로 끌어당겼던 모양이에요. 좋은 걸 경험하고 나면 꼭 함께 나누고 싶어지는 마음이 들어서, 지역 페미니즘 공동체와 레즈라이트에 올려야지 하게 되는 제 마음과도 똑 닮았지요. 클래스에 빈자리가 생긴 것을 알리자 시간을 묻고는 “한 시? 한 시……. 일어날 자신이 없습니다.”라고 하던 B를 어떻게든 깨워서 같이 올 걸 하는 마음도 들었어요.
너무 좋았어서 아쉬워하며 나오던 때, 이름을 다시금 물어보시던 선생님은 “잘하시던데요.”라고 이야기하시며 찡긋 웃으셨어요. 쭈뼛쭈뼛 들어와 요가 경험을 물으시는 말에 “처음이에요.” 하자마자 팔꿈치로 팔꿈치를 툭 가볍게 치시며 “괜찮아요. 오늘 기초 수업이니까 하실 수 있으실 거예요.” 하시던 때랑 똑같은 얼굴로요. 그렇게 저도 부드럽게 요가의 세계로 초청되어, 코로나가 조금 더 잠잠해지면 (상대적으로 수업 인원이 많은 것 같은) 지역 요가원에 등록해보려 합니다. 그러면 아마 또 그만큼 더 새로운 몸이 되겠지요
'일상 > 지난 이야기(2020)' 카테고리의 다른 글
콘서트에 다녀왔습니다 (0) | 2021.02.22 |
---|---|
판다로부터 (0) | 2021.02.22 |
I AM THE BOSS (0) | 2021.02.22 |
반골의 상 (0) | 2021.02.22 |
7년의 밤 (0) | 2021.02.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