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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명을 언급하는 것은 언제나 조심스럽다. 서로의 이름을 다정하게 부르는 것으로 애정을 표현하는 문화 속에서 자랐지만, 말이 아닌 글 속에 이름을 남겨두는 것은 언제나 조심스러웠다. 이웃 공개로 쓰는 블로그에서조차 이름을 부르는 대신 이니셜 범벅인 글을 새겨왔다. 부르는 이름 없이도 누구 이야기인지 알 만한 사람들이 아니고서야 누구인지 특정할 수 없게끔 이름의 세 글자 중 한 글자만을 남겨두면서 글을 써왔다. 이름을 부르는 게 어려워진 것은 어른이 되어서도 아니고 이름보다 직급으로 부르는 게 자연스러운 문화에 편입되었기 때문도 아니다. 이름을 불렀다가 불린 이름이 다칠까 봐 그랬다. 누구도 해치지 않는 글을 쓰려고 노력하면서, 안전하다고 느껴지는 공간 안에서만 글을 쓰면서, 서로를 해치지 않을 사람들 앞에서만 쓴 글을 공개하면서도 그랬다. 이름을 부르는 일을 사적으로 전하는 편지로만 국한하다 보니 편지에서는 유독 이름을 자주 불렀다. 부르지 않아도 읽어 줄 사람인데도, 멀리 있는 사람을 외쳐 부르듯이.
오늘은 언젠가의 편지에서도 몇 번이나 불렀던 이름이 들어간 글을 봤다. 그 글을 보기 며칠 전에는 그의 이름을 공공연하게 부르는 다른 글을 봤다. 둘 다 주희 님 이름을 부르면서 주희를 걱정한다고 했다. 이름을 부르며 걱정을 운운하며 조롱하던 글을 보고, 진심으로 걱정하는 다른 글을 보고, 나도 내가 아는 그에 관하여 이야기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해야겠다가 아니라 해야 한다고.
나는 아직 주희 님을 모른다. 모르면서 안다. 그와 직접 만난 건 오늘이 서너 번째에 불과하다. 전화번호를 알게 된 건 최근 새벽의 일이다. 그와 함께 보낸 시간의 대부분은 각자의 모니터 너머에 있었다. 선거 이후 앞으로 무엇이 필요한가에 관하여 이야기하는 것을 들으며 그는 나와 달리 멀리 내다볼 줄 아는 눈을 가졌구나 싶었다. 활동을 위해 야간전담간호사로 근무한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그가 자신의 시간 중 얼마나 많은 시간을 기꺼이 다른 여성들을 위해 쓰고자 하는가에 놀랐다. 내가 알기로 그는 수도권에 있는 것 같았는데 어느 날은 부산에 가 있고, 또 며칠 뒤에 연락해 보면 전혀 다른 지방에 있다가, 그 다음날이면 도대체 언제 올라왔는지 여의도에 있다고 했다. 오늘은 인천에서 만났지, 우리가.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도 그때마다 달라서 어느 날에는 간호사 인권과 관련한 시위를 하고 있기도 했고 또 어느 날에는 그가 기획한 여성 공동체의 향후 활동 때문에 머리를 감싸매고 있기도 했고 또 어느 날에는 동료에게 가해진 여성혐오적 공격에 울분을 터뜨리다가 이대로는 안 된다고, 뭐든 해야 한다고, 그게 시위든 조직체 구성이든 피해자 지원이든, 이대로 손을 놓고 있을 수만은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 다음번에 그를 만난 것은 무언가를 하기 위해 만들어진 단체 안에서였다.
내가 아는 주희 님은 내가 아는 가장 바쁜 사람들 중 하나다. 내가 그를 알기 전에 그가 해왔던 활동들을 생각해 보면 내가 그를 알게 된 후 그가 특별히 바빠졌다기보다는 꾸준히 바쁘게 지냈으리라. 어쩌면 더 바빴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사람이 새로운 일을 시작할 때는 더 많은 시행착오가 필요하니까. 더 헤매고, 찾고, 애써야 하니까. 나는 내가 모르던 시절 그가 지나쳐왔을 시간을 정확하게 어림하지 못한다. 여성의당과 위드가 지금은 당연하게 존재하니까. 당연하게 존재하는 것들이 당연히 없던 시절을 나는 귀동냥으로 들은 이야기에다 현재의 그가 아낌없이 여성에게 쓰고 있는 돈과 시간과 노력을 조합해 막연하게 추측할 뿐이다. 그때도 참 열심히 바빴겠구나, 그 덕에 내가 지금 알고 있는 것들이 당연해질 수 있었겠구나, 하고.
"해야 하는 일을 백으로 쳤을 때 그중에 팔 할, 아니 반도 못 하는 것 같아요."
메시지 목록에 주희 님 이름이 홀로 생겨난 건 그런 이야기를 하면서였다. 그러면 해야 할 일을 알려 주시면 하루 중 틈틈이 짬을 내서 러닝메이트처럼 해야 할 일 목록을 함께 봐 드릴까요? 제안하고 몇 시간 지나지 않아 그가 들고 온 할 일 목록을 보고서 나는 주희 님이 정확하게 말하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보통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해야 하는 일의 가짓수는 열 개 남짓인데요, 하는 말이 빠져 있었다. 그가 누락한 말은 내가 몇 번이나 대신 했지만(예:"보통 사람들은 이것보다 훨씬 적은 일을 해요, 주희 님."), 그가 가져오는 목록의 길이가 좀처럼 줄어들지 않는 것을 보고는 같은 말을 되풀이하는 빈도가 줄었다. 해야 할 일 목록이 남들보다 두세 배는 되는데도, 내가 장을 보기 위해 적어가는 목록보다도 훨씬 긴 데도 그가 여성 인권을 위해 "이보다 더 많은 일을 해야 돼요. 필요한 게 정말 많은데."라고 말하는 걸 보면서는 아주 하지 않게 되었다. 그는 내가 아는 사람 중 스스로 많은 일을 부과하는 사람이면서, 자신이 하고 있는 것과 해낸 것에 관해서 초점을 맞추기보다 하지 않은 일들에 초점을 맞추는 사람이라서. 그게 주희 님이 더 앞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내달릴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인 것 같아서. 그래서 목록 줄이기라는 목표를 할 일에 보태는 대신 나는 그가 해낸 것들에 관해서, 그가 들인 수고에 관해서만 이야기하게 됐다. 그가 지금 여기에 만들고, 유지하고, 그러기 위해 애쓰고 있는 것들이 얼마나 대단한가에 관하여 그에게 이야기하게 됐다.
부산에서 진행된 시위 이후 그와 통화하던 날에 제출해야 했던 글쓰기 과제는 <자기소개서에는 쓰지 않을 자기소개서>가 주제였다. 나는 그때에도 이름을 부르지 못하는 글을 쓰면서 그의 결기가 날카로워 마음이 아프다고 적었다. 세상이 이렇게 여성 혐오로 꽉 차 있는데, 그래서 아프고 다치고 힘든 여자들이 이렇게 많은데 자기가 어떻게 행복할 수 있겠냐는 말이 얼마나 아팠는지 술에 취한 사람처럼 비틀대는 문장으로 썼다. 곳곳이 망가지고 부서졌어도 세상은 세상인데, 그 세상에 자기 하나를 부딪쳐서라도 무언가 해낼 수 있다면 기꺼이 그렇게 하겠노라는 말을 몸 안으로 꼭꼭 씹으며 썼다. 눈물을 쏟지는 않았지만, 키보드 위에서 손가락을 움직이는 내내 목이 자주 아팠다. 오래 울고 난 직후처럼 울대뼈가 움직일 때마다 목 안이 쓰렸다. 내가 아는 그는 허장성세나 술기운에 취해 그런 소리를 하는 사람이 아니라, 정말로 그럴 사람이라서, 그게 무엇이든 감수하겠다고 하면 꼭 그러고 말 것만 같아서 그랬다.
[그래도 저는 그가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다른 여자들 모두가 행복해 그도 마침내 행복할 수 있게 된, 그만큼 거창한 행복이 아니더라도 그에게 말한 것처럼 저는 그가 자주 웃었으면 좋겠습니다. 세상이 누구나 행복할 수 있는 곳이면 참 좋을 텐데 곳곳이 남루한 탓에 잘못 발을 디뎠다가는 무너지기 쉽고, 의도치 않게 넘어지는 것조차 이렇게 쉬운데 발목을 노리고 팔을 뻗는 악의가 많아 이 작은 소원이 이렇게나 어렵습니다. 그게 자주 서글프고 그래서 자꾸 애틋해집니다. 아마 휘청이고 넘어져 무릎이 깨졌을 때 팔을 붙들어 주고 그래도 웃을 일을 만들어 준 여자들이 있어 더 그렇지 않은가 싶습니다]
그래도 나는 주희 님이 행복했으면 좋겠다. 많은 여자들이 웃을 수 있는 세상을 위해 부단히 애쓰는 사람 중 하나지만 내게 그도 한 사람의 여자라서, 그가 행복했으면 좋겠고, 그를 위해 정말로 이렇게 염려하는 여자도 행복했으면 좋겠고, 그가 노력한 만큼 더 많은 여자들이 행복해졌으면 좋겠다.
오랜 습관 탓에 이름을 하나씩 나열하지는 못하지만 내가 알고 있는 몇몇 사람들의 이름과 마찬가지로 나는 김주희라는 이름에 부채감이 있는 사람이다. 나는 부채감이 있는 이름들 앞에서 내가 가진 부채감에 관하여 몇 차례 고백한 적이 있다. 그들이 지나온 시간들에 관하여 들려준 긴 이야기를 들은 후에 대개 그랬다. 여성혐오 범죄인 강남역 살인사건 이후 이어진 불편한 용기 시위, 미투 운동, 소라넷 폐지 운동, 낙태죄 폐지 운동, 지역 기반 여성 공동체 마련과 여성의당 창당을 포함한 페미니즘 리부트 흐름 속에서 얼마나 많은 여자들이 애썼는지 나는 서로 다른 여자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알았다.
지난한 노력과 짙은 피로에 관하여 이야기하면서도 그 속에서 만난 여자들에 관하여 이야기할 때면, 그들과 함께 거둔 성취들을 말할 때면 어두운 방 안에서도 별처럼 빛나는 눈동자들을 봤다. 주위를 아무리 둘러보아도 캄캄하기만 하다가 희미하게 밝아질 수 있었던 게, 동틀 녘이 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먼저 눈 뜬 여자들이 멀리서 서로를 향해 들어 준 등불 때문이라는 걸 알게 됐다. 미끄러지지 말라고, 거기 위험하니까 이쪽으로 발을 디디며 오라고 말해주던 사람의 이름이 조롱 조의 문장 속에 적힌 걸 보면서 이름을 더 많이 불러야겠다고, 나도 작게나마 등불을 켜야겠다고 생각했다. 우리가 여기 있다고, 주희 님 이름을 이렇게 불러주는 목소리가 있다고. 우리가 있다고.
나도 그처럼 그를 위해 필요한 것들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고 그의 앞에 예비해줄 수 있다면 좋을 텐데, 그만한 그릇은 되지 못해서 다만 그런 말들이나마 양초처럼 켜두기로 했다. 조금 밝아지나 싶더니 다시 어둡고 깜깜한 날들이 길게 이어지고 있으니까. 처음 부쳐진 편지의 마지막 문단에 적힌 모든 말들에 공감하는 마음으로, 지하철과 집에 돌아오는 길목에 쉴 새 없이 적었다. 주희 님과 같은 사람이 아주 많아져야 하겠지만 그 이전에 할 수 있는 가장 쉬운 일은 현재 존재하는 김주희를 응원하는 일일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그의 이름을 부르고, 안부를 묻고, 그를 응원해 주었으면 좋겠다. 여성에게 주어지는 사회적·정서적 지지는 가장 작은 사회 체계인 가정에서조차 단 한 번도 충분했던 적이 없지만, 우리는 혈연이나 제도로 형성된 체계가 아니더라도 어떤 것들을 서로 주고 나눌 수 있는지 알고 있으니까. 여성이 여성에게 불어넣어 줄 수 있는 힘과 연대를 아니까. 그러니까 많은 주희들이 주희에게 너를 얼마나 생각하고 아끼는지 말해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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