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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0월, J에게

칠월[JULY] 2021. 3. 8. 21:56

J에게

 

왜 이니셜을 이렇게 적었는지 궁금해할 수도 있겠다. 어쩌면 아리송한 마음으로 읽기 시작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해. 이제는 알아차렸을까?

오늘 여기는 한글날이라 공휴일이었어. 금요일은 다른 요일에 비해 원래도 원래는 『사일런트 메가폰』이라는 전시회를 보러 나가려다가 사정이 생겨 집에 있었고, 조금 가라앉은 채로 보냈어. 서로 다른 시간에 살고 있어서 우리가 주고받는 연락은 가끔은 촘촘했다가 이따금은 아주 느슨해지곤 하는데, 오늘은 비교적 우리 시간이 많이 포개져 있었지. 생각해 보니 전화를 할 수 있을지 물어볼 걸 그랬다 싶어. 아마 전화할 상태가 아니었어서 당시에는 생각을 못 했던 모양인데 돌이켜 생각할수록 아쉽다. 우리가 서로의 안부와 시시콜콜한 면들을 탐사해나가던 때, 너는 네가 힘든 날에 내가 꼭 그걸 아는 사람처럼 찾아오곤 했다고 이야기했지만 내게도 네가 그랬어. 멀리서 각자 열심히 공전하고 있다가 이따금 네가 건네주는 말들이 마치 알기라도 한 것처럼 깨지고 부서진 틈에 스미던 날들을 기억해.

근데 사람이 다 그렇지 뭐. 비슷하게 바라는 게 잘못은 아니잖아.

오늘 이야기를 주고받는 틈새에 메신저 맨 위에 꽂아두었던 너의 말을 자꾸 바라보게 되더라. 성격은 쉽게 바뀌지 않고 그래서 나는 자주 같은 문제를 놓고 헤매. 그래서 달이 몇 번씩이나 차고 기울어도 네가 내게 해준 말들이 변함없이 따뜻하게 와닿는가 봐. 같은 단원에서 연거푸 틀려 맨 뒷장의 나달나달한 정답 페이지를 펼쳤을 때 친구가 적어 둔 다정한 낙서를 발견하면 이런 기분일까. 다음 장으로 넘어갈 수 있게 내게 힘을 불어넣어 주는 건 내가 두려워하거나 어려워하는 사람들이기보다는 내가 아끼고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들이고, J 너 역시 내게 그런 사람이 되어 주어 감사해.

우리가 알게 된 이후로 시간이 차츰 흐르면서 우리는 전에는 생각하지 않았던 문제로 서로 골몰하기도 하고, 그러면서도 어떻게 하면 한 발짝을 더 내디딜 수 있을까 생각해 보기도 하고, 그런 서로의 등에 멀리서 응원의 말을 메아리처럼 던져 보게 됐지. 네게 했던 말들은 언제나 진심뿐이라서, 나는 네가 신발코 앞에 놓을 길을 부지런히 예비하는 사람이라 근사하다고 생각하고, 네 신발 밑창이 진창을 피해 부드러운 잔디와 탄탄한 대로 위에 놓이기를 항상 응원해. 가끔은 한 발짝 떼기 전까지 어느 쪽으로 향할지 오래 고민해야 할 때도 있을 테고, ‘여자니까, 한국인이니까, 그 나이가 되었으니까’ 같은 소리들이 네 발목을 올무처럼 옥죌 때도 있겠지만 나는 네가 가진 올바른 방향 감각과 힘을 믿어. 잘 모르는 분야더라도 알아야겠다고, 해내야겠다고 생각했을 때 열심히 고군분투하던 너의 모습들을 지켜본 역사에 근거해서, 네가 햇빛이 더 밝게 부서지는 곳을 향하리라고 낙관해. 이제 나는 네게 적어 보냈던 시에서 호명하던 곳으로부터는 멀어졌지만, 그래도 지구적 관점에서는 아마 별 한 귀퉁이라는 점에서 별 차이가 없을 거야. 힘든 날에는 슬쩍 신호 줘. 내가 여기에서 거기까지, 느리더라도 열심히 얼쩡대러 갈게.

여기는 이제 몇 시간 후면 네 생일에 도착해. 나는 지구가 반 바퀴보다 조금 더 도는 동안 먼저 네 생일을 축하하고 있을게. 여기에서 그곳까지 천천히 통과할 너의 생일이 행복하고 기쁜 일들로 가득하길 바라. 생일 축하해.

사랑을 담아
친구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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