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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운동이라는 망망대해에서 물장구부터 쳐 봐요.


1.
샤크짐으로 통용되기도 하는 스플래시-그룹 트레이닝 체육관의 인스타그램 계정(@splash_grouptraining)에는 소개 글이 이렇게 적혀 있다. 무슨 오류인지 몰라도 최근 인스타그램에서 활자가 심각하게 깨져 보이는 통에(예: ㄲㅐㅈㅕ로 보인다) 클래스를 다 마치고서야 제대로 읽었다. 적으려던 서두를 몽땅 지우고 그대로 옮겨 적었다. 스플래시를 설명하는 가장 정확한 말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2.
어렸을 때는 수영을 배웠다. 물속에서 호흡하는 법부터 시작해 수면을 향해 발을 어떻게 차야 하는지를 배우고, 자유형과 배영과 평영으로 나아가는 과정이었다. 나는 접영을 배우고 싶었고 접영이 가장 근사하다고 생각했다. 배우지 못한 것에 관한 열망이었을까, 아니면 과정의 최정점에 있는 것 같아 생긴 기대감이었을까. 하지만 학습 과정을 마음속에서 제멋대로 뒤섞어 본대도 여전히 접영이 가장 근사해 보인다. 수면을 강하게 휘젓는 팔과 다리의 움직임을 떠올리면 열망과 기대감이 한데 섞여 열기로 수렴한다. 배운 영법을 연습할 차례를 기다리면서 물속에 잠겨 서 있을 때 옆 레일에서 접영을 하는 사람들이 왕복하면, 나는 마음속으로는 배운 영법을 복습하는 대신 옆 레일 사람과 똑같이 팔과 다리를 휘젓고 있었다. 팔과 다리를 그들처럼 능숙하게 잘 움직이고 싶었다. 몸을 잘 쓰고 싶은 욕심이 키와 함께 무럭무럭 자라던 시절이 내게도 있었다.

초등학교 사학년 즈음부터 오학년이 되던 시기 사이에 바짝 자라고 멈춰버린 키처럼, 운동에 관한 욕심도 웃자라고는 일찍 성장을 그만둬버렸다. 일어난 일들을 나란히 세워두면 도토리 키재기처럼 시기가 서로 엇비슷하다. 오학년 겨울 방학 즈음 첫 정혈이 있었고, 이차 성징을 맞아 몸이 변하기 시작했으며, 주위에서 몸을 바라보는 시선도 예고 없이 바뀌었다. 누구 몸이 더 바람직한(소위 성인 여성 연예인들에 비추어 볼 때 예쁘고 이상적인) 형태인지에 관한 이야기들이 여기저기서 범람하기 시작했다. 그건 누구 가슴이 어떻다더라, 누구는 브래지어를 해야 할 만큼 가슴이 큰데 이상하게 안 하고 다닌다더라 하는 여자아이들 사이의 이야기이기도 했고, 더 저열한 형태로 발화된 남자아이들 말이기도 했으며, 선의와 칭찬으로 가장한 어른들의 말이기도 했다가, 이내 움직이는 모든 순간 내 몸이 타인에게 어떻게 비추어 보일지를 생각하게끔 하는 머릿속 목소리로 자리 잡았다.

교정기를 꼈든 이 사이에 뭐가 꼈든 익살스럽고 개구지게 웃던 남자아이들 사이에서 어느 날인가부터 입을 손바닥으로 가리며 웃게 되었고, 운동장 축구 골대나 농구대는 당연히 남자아이들 몫으로 넘겨주고는 스탠드에 삼삼오오 둘러앉아 연예인과 유행에 관한 이야기들을 늘어놓게 되었다. 남자애 하나가 뻥 찬 공이 골대 안으로 들어갈 때면, 던진 공이 링을 따라 빙 돌 때면, 옆 레일의 접영을 바라보던 때처럼 운동장 속 움직임을 눈 안으로 열심히 주워 삼키면서도 그랬다. 나도 똑같이 몸을 잘 쓰고 싶다는 욕망이라는 사실을 더는 인지하지도 못하는 채로.

여중, 여고에서 체육 수업을 하게 되면서 몸은 성적 대상화의 시선과 말에 상대적으로 덜 노출되었으나, 머릿속 목소리가 이미 공고해진 탓에 체육 수업은 여전히 지루했다. 체육 선생님들도 크게 기대를 하지 않는 듯했고, 체조와 허들과 피구는 지루하거나 어렵거나 무서워 운동장보다는 자꾸 스탠드가 그리워졌다. 이 시기에 이르러서는 운동을 잘하는 친구들과 그렇지 않은 친구들 사이의 기량 차이도 선명하리만큼 양극화되었고, 나는 영어와 수학을 포기하는 대신 자연스럽게 체육을 포기한 체포자가 되었다. 체육을 포기하는 것은 또래 여자친구들 사이에서 그다지 불명예스러운 일이 아니었다. 오히려 피부가 새빨개지도록 안간힘을 쓰는 것, 안 될 것 같은 일에 아등바등 악을 써보는 것, 부딪히거나 넘어져 몸에 흉터가 날 수 있는 행동을 무릅쓰는 것이 이상한 행동으로 분류되었다. 체력장 턱걸이에서 두드러지게 오래 매달려 있던 친구는 손에 힘이 다 빠져 내려오는 게 아니라,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던 무리 속에서 나온 가느다란 웃음소리에 지면으로 내려섰다. 아주 커다란 무게추가 발목에 매달린 것처럼. 우리 중 누구 하나의 잘못이나 악의라기보다는 우리 모두가 그렇게 불명예와 명예를 분류하도록 길들여졌다.

사회적으로 바람직하다고 여겨지는 여성의 얼굴빛을 유지하기 위해 바르던 것들을 더는 바르지 않게 되고, 몸을 잘 쓰게 되기까지 필요한 시간과 기회와 과정을 자의와 타의에 의하여 박탈당해 왔음을 깨닫고 나서도 모든 족쇄에서 단번에 벗어날 수는 없었다. 너무 오랜 시간 동안 타인에게 보이는 몸을 생각해 온 탓에, 내 눈에 보이는 내 몸의 서투름을 받아들이기가 어려웠다. 오랜 기간 방치하여 두었으니 몸을 못 다루는 건 당연한데도 숨이 차고 몸을 어떻게 움직여야 좋을지 도무지 모르겠을 때면 대상도 없이 자꾸만 겸연쩍었다. 운동 시설이나 팀 운동으로 향하는 기회를 반복해서 유보했다. 아직은, 조금 더 혼자서 연습해 보고, 이 실력으로는……. 유예 기간이 길어지는 동안 작은 성취들도 있었으나, 몸을 방임한 지 오래되었던 만큼 나는 내 몸을 돌보기에 좋은 스승은 아니었다. 운동 빈도와 강도는 쉽게 느슨해졌다. 혼자 하는 타협은 항상 수월하게 체결되었다. 혼자 하는 모든 일이 그렇듯이.

운동이라는 망망대해가 너무 거대하고 광활해서 ‘오늘은 여기까지만 해보자’ 하고는 물속에 고개만 담그다 돌아 나오는 날이 많았다. 그 안에서 접영을 하고 싶은 마음이 분명히 한편에 있는데도.


3.

🥬: 2월14일(일요일) 12시~13시로 그룹pt 일정 잡았습니다..! 초초초초보자 프로그램으로 준비해주시겠다고 합니다😂 장소는 한성대입구역 근처 체육관인데 구체적인 위치 다시 한번 공유해 드리겠습니다!
🥦 : 앗 좋습니다~~!
🍅 : 와!!! 감사합니다~!~! 실내 운동화를 준비해야겠네요ㅎㅎ
🦑 : 예약 감사합니다~~!

 

팀 리좀에서 스플래시-그룹 트레이닝 체육관으로 그룹 PT를 함께 받으러 가자는 제안이 나왔을 때, 두려움보다 반가움이 컸던 건 망망대해 속에서 조금 더 헤엄쳐 나아가 보고 싶은 마음이 그만큼 커졌기 때문이리라. 그룹 PT 일정을 잡고는 다른 때보다 성실하게 운동 벼락치기를 하기도 했다. 성실한 벼락치기라는 말이 가진 태생적인 어불성설처럼 그런다고 당일에 프로그램을 더 잘 소화할 거라고 기대한 건 아니지만, 그러면서도 뭐든 해서 가야 할 것 같았다. 방학 숙제를 오래 밀려 지레 찔린 초등학생의 마음과도 비슷할 것이다. 그간 밀린 운동 숙제를 하루아침에 몰아서 다 해내진 못하더라도 가기 전 며칠 치나마 바짝 해서 가고 싶었다.

팀 내 최약체만큼은 피하고 싶다던 🦑의 이야기도 그 벼락치기에 한몫했다. 때아닌 운동 바람이 난 모습을 보고 의아해하던 친구 🐲는 전후 사정을 듣고는 깔깔 웃음을 터뜨렸다. 러닝을 오래 한 🍅, 복싱을 배운 적 있는 🥬, 필라테스를 꾸준히 하고 있는 🦑 사이에서 나(🥦)는 최약체가 아니라고 했다. 그럼? 수시로 짓궂게 굴지만 다정한 🐲는 나를 이렇게 정의했다.

뱁새

코치님께 그렇게 스스로를 소개하라는 말 다음에는 다른 팀원들 쫓아간다고 무리하거나 다치지 말고 즐겁게 다녀오라는 말이 따라붙었다. 듣자마자 분명 분기탱천했는데, 뒤따라 나온 말의 속 알맹이가 상냥해서 어느새 수긍하고 말았다. 가랑이 다치지 않게, 경험 삼아 다녀와야겠다고.


4.
평소에는 베개에 머리가 닿기만 하면 순식간에 잠들면서도 소풍 전날에는 잠을 설치곤 했던 습관처럼, 평소보다 훨씬 적게 잤는데도 운동 날에 눈이 번쩍 뜨였다. 🐲의 집에서 출발해 체육관에 도착하고 나니 삼십 분 가까이 시간이 남아 있었다. 일찍 도착했음을 알리며 들어가기에 너무 이른 시간이라 체육관을 가운데 두고 한 블록을 빙 걷다가 편의점에 들어가 초콜릿을 세 개 샀다. 허리를 다쳐 오지 못한 🍅 외에 곧 모일 세 사람(🥬🥦🦑)의 몫으로. 공복이면서도 긴장감 때문인지 뱃속에 나비가 가득 찬 것처럼 허기가 느껴지진 않았다. 하지만 운동을 마치고 나면 그러지 않을 것 같았다. 숭구리당당 숭당당 하는 다리로 돌아오는 거 아니겠냐는 동생들의 예언을 가능한 피하고 싶었으나, 허기감을 끌어안은 채 후들후들 떨리는 다리로 계단을 걸어 올라오는 모습을 나조차도 이미 본 것만 같았다.


5.
옷을 갈아입고 약간 긴장한 상태로 코치님 앞에 나란히 섰다. 오늘 배울 동작들에 관하여 설명을 들은 후 누워서 폼롤러를 이용해 스트레칭하면서, 몸도 마음도 조금씩 풀어지기 시작했다. 롤러가 닿은 부분이 시원한지 아닌지 같은 이야기를 주고받으면서, 잘하지 못하는 걸 곧 시작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가벼워졌다. 공과 두꺼운 매트를 겹겹이 쌓은 위로 스쿼트 자세를 잡아 보았다가 높이를 하나씩 낮추며 자세를 반복해보는 동안 부담감은 계속 옅어졌다.

쉽죠? 할 만하죠?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얼떨떨했다. 몇 년간 수영을 배우던 때를 빼고, 몸을 움직인 후 이렇게 곧바로 긍정적인 피드백을 경험한 적이 있던가. 원하지도 필요하지도 않은 미래를 약속하는 말 대신, 할 것과 해낸 것에 초점을 맞춘 피드백이 낯설었다. 다른 팀원에 비해 더 높은 난이도로 나아가지 못하더라도, 하나씩 하나씩 스스로 지나친 단계가 충분한 원동력으로 기능했다. 그래도 매트는 하나 뺐지, 이제는 그거 하나는 빼고서도 해낼 수 있지, 하고서. 체형 변화와 체중 감량에 관한 막연한 약속보다도 효과적이고 확실한 동기부여였다.

무릎 모이지 않게!

할 만해 보인다고, 잘 해내고 있다고 이야기해주시면서도 신발 코가 너무 벌어지지는 않았는지부터 코치님이 시범을 보였던 자세와 지금의 자세가 어떻게 다른지에 관한 이야기까지, 필요한 피드백이 정확한 때에 수시로 날아들었다. 분명 운동하는 사람은 세 사람이고 코치님 눈은 두 개뿐인데도, 자세나 방식이 약간 아리송해지면 어김없이 시야 가장자리에 어느새 가까워진 코치님 신발 코가 보이거나 코치님 목소리가 날아와 등에 닿았다.

이야기를 들으며 발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팔꿈치가 밖으로 벌어지지는 않았는지 신경을 쓰는 동안 움직이는 스스로의 몸이 낯설었고 낯선 만큼 익숙해졌다. 여기에 이렇게 힘이 들어가는구나, 이만큼의 힘이 실리는 것도 아직은 힘들구나, 이 부분 근육이 긴장하는구나, 하고. 몸을 잘 쓰는 방법은 여전히 모르더라도 내 몸이 어떻게 그리고 얼마나 움직이는지는 조금씩 알 것 같았다.


6.
내 몸이 무엇을 좋아하고 무서워하는지도.

이름도 낯설었던 로잉 머신이 제일 무서울 줄 알았는데, 로잉머신이 이렇게 신나고 턱걸이가 이렇게 무서울 줄은 몰랐다. 턱걸이 바를 쥐기 위해 밟고 서 있던 운동기구에서 발이 떨어지는 순간 바를 붙든 양팔과 어깨부터 사지가 빳빳하게 굳는 기분이 들었다. 무서워서 그랬을까. 그 와중에 높은 곳은 질색하는 엄마 생각이 났다. 엄마와 함께 간 여행지에서 케이블카를 타며 울었다던 막냇동생도. 한 핏줄이 이렇게 분명하게 이어져 있다는 사실을, 땅에서 떨어진 발로 생각했다.

한 번 더 해볼까요, 아니면 다른 동작으로 해볼까요?

울면서도 케이블카를 탈 기회를 사양하는 대신 식구 손을 잡고서라도 케이블카에 다시 타던 막냇동생도 나도, 엄마 피를 확실히 물려받긴 했던 모양이다. 코치님이 그렇게 물어봐 주셨을 때 눈앞에 놓인 두 번째 기회에서, 고작 두 번째 기회에서 포기하고 싶지는 않았다. 바닥에 앉아 걱정스러운 얼굴로 올려다보는 🦑과 🥬의 응원을 받으며 보조 도구 안으로 긴장한 발을 밀어 넣을 때도 다시금 도전해보겠다고 한 걸 후회하지는 않았다. 다시금 시도하고 나서, 운동을 다 마치고 나서는 잘했다고 생각했다. 이번에 또 타협하고 돌아섰더라면 다시 턱걸이 바를 잡기까지 얼마만큼의 시간이 걸렸을지 알 수 없으므로.

 


7.
리좀 팀원 모두 숭구리당당 숭당당 다리가 되어 계단을 걸어 올라왔으면서도, 힘들고 배고프다는 이야기를 하면서도, 성취감과 기대감에 관한 이야기를 오래 했다. 못한다고 생각했고 못 할 거라고 예상했는데 해보니까 되던 경험을, 그래서 앞으로 더 잘해보고 싶은 마음을 나누며 걸었다. 집과 조금만 더 가까웠더라면 참 좋았을 텐데 하는 이야기를 하다가, 한성대입구역 근처로(정확히는 스플래시 체육관 근처로) 다 같이 이사를 와서 모여 살자는 이야기를 하다가, 자연스럽게 여성 체육관에 관한 이야기와 여성으로 지나온 운동 경험들을 말하다가, 또 아주 자연스럽게 삼천포로 빠져서 다른 이야기를 하며 쌍다리 돼지불백을 먹으러 갔다.

🦑 : 마지막에, 힘든 와중에 노래가 너무 신나서…….
🥦 : 무슨 노래가 나왔었어요?
🦑 : ?
🥦 : ???
🦑 : 저는 저희 둘이 노래 박자에 맞추어 함께 스쿼트를 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요!
🥦 : 헐, 노래가 나온 줄도 몰랐어요.

3-2-1. 벽에 걸려 있던 디지털시계가 카운트다운하는 걸 보면서 심장이 터질 것 같던 기분은 선명하게 기억하는데, 왜 내가 윗몸 일으키기를 몇 개 했는지는 자꾸 헷갈리고 노래는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을까. 둘 다 깜짝 놀랐던 이야기를 되짚어 보면, 몸을 움직이는 감각에 집중하느라 몸과 무관한 소리는 전혀 듣지 못했던 게 아닐까 싶다. 알려주셨던 자세로 몸을 움직이기 위해 몸에 온 신경을 쓰느라. 몸에만 집중하는 경험이 아직 익숙하지 않아 그랬을 수도 있을 것이다.

 

 

8.

한 번 알고 나면 모르던 때로 돌아갈 수 없다는 말처럼 몸의 소리만 듣는 시간을, 몸의 움직임에만 집중하는 시간을 가지고 나니 그다음을 향해 발걸음을 내디디고 싶어졌다. 더 알고 싶었고, 더 잘하고 싶었다. 매트와 공을 쌓아두고서 스쿼트를 하다가 매트를 한번 빼보고, 다음으로는 공도 하나 빼보고 했던 것처럼. 안 해본 것들을 배워보고, 해본 것들을 더 어려운 방식으로 숙달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곧바로 로잉 머신을 검색했다가 가격과 크기를 곰곰이 생각해보고는 이내 마음을 접긴 했지만, ‘할 수 있는 것들을 해보자’는 마음은 단단하게 자리 잡았다. 체육관에서 들었던 것과 같은 무게의 덤벨을 하나 사고, 가르쳐 주신 방식을 머릿속으로 되새기면서 팔굽혀펴기와 윗몸 일으키기를 조금씩 연습하기 시작했다. 여전히 윗몸 일으키기를 하려고 눕기만 하면 중력이 천근만근 늘어나는 것 같고, 팔굽혀펴기 자세를 취하고 상박을 아래로 움직이면 육신의 무게가 태산처럼 느껴지긴 하지만, 그래도 꾸준히 하면 언젠가는 조금 더 늘지 않을까. 접영까지 나아가지는 못했을지언정, 음-파-음-파를 배우다가 어느새 평영까지는 나아갔던 시간처럼.

 

 

9.

🥦 :코치님! 기억하실 수 있으실지 모르겠지만 그, 셋 중에 턱걸이 혼자 무서워해서 옆에서 따로 했던 수강생이에요! 그때 강습받고 강습 경험이 몇 번 안 되긴 하지만 여태 받았던 운동 강습 중 너무 좋았고 운동에 관한 흥미와 호기심이 생겼어요. 이번에 2/28 일요일 반 모집 글을 보고 신청을 해보고 싶어졌는데 초초초심자 코스 수강생으로는 혹시 참여가 어려울까요?
🦈 : 저희 체육관에 초보자 입학반 수업이 있습니다! 입학반 수업을 들으시면 좋을 것 같고요! 에리카 언니가 입학반 진행하시는데 저보다 훠얼씬 다정하시고 친절합니다ㅎㅎ 2월 28일 수업도 신청 가능합니다~
🦈 : 그리고 누군지 기억합니다. 다시 해보시겠어요? 했는데 다시 해보신다 해서 저도 좋았습니다. 포기하지 않으시고!

 

긴 시간 동안 수영을 계속했던 데는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수영장에서 보낸 기억을 하나씩 거슬러 올라가면 가장 첫 번째 지점에는 처음 간 수영 강습에서 둘째 동생과 나란히 앉아 동동동동 발을 움직이며 물장구를 쳤던 기억이 놓여 있다. 튜브 없이 물을 그렇게 세차게 차본 건 처음이었고, 발바닥에서부터 허벅지까지 느껴지는 물의 감각이 간지러우면서도 좋았다. 처음 물장구를 친 이후 대중목욕탕에서 운 좋게 빈 탕에 둘이 들어가게 되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나란히 앉아 물장구를 치곤 했다. 누가 시키지도 않은 복습을 자발적으로 했던 기억으로도 최초일 것이다.

 

운동이라는 망망대해에서 샤크 코치님 그리고 리좀 팀원들과 함께한 물장구도 즐거워서, 트위터에 게시된 원데이 클래스 공지사항을 보고는 (몇 초 정도는) 망설였으면서도¹ 다시금 체육관 문을 두드렸다. 아는 사람 없이 여러 사람들과 함께 운동을 해야 한다는 사실에 어김없이 전날 밤을 긴장과 설렘으로 설쳤지만, 이번에도 숭구리당당 숭당당 다리가 되어 체육관 계단을 걸어 올라와야 했지만, 이번에도 기대하고 예상한 것 이상으로 즐거웠다. 폼롤러로 하는 스트레칭 없이도 ‘잘하지 못하는 걸 곧 시작해야 한다는 부담감을 뺄 수 있었다. 대신 곧 배울 것에 관한 호기심과 흥분으로 빈 자리를 꽉 채웠다.

 

더 올라오실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저도 마음만큼은 더 그러고 싶은데요…!)

 

아직은 코치님 제안에 고개를 세차게 흔들어야 했지만, 

 

 

10.

아까보다 더 잘하시는 것 같아요.

힘들다고 하시지만 잘 올라오시는데요!

얼마 안 남았어요. 파이팅!

거의 다 했어요!

수고하셨습니다! 

 

짝과 서로 공을 던져 주고, 수행한 동작의 개수를 세어주는 틈틈이 우리는 서로를 격려했다. 생각해 보면 함께 보내는 시간 중 팔 할, 아니 구 할은 나를 놀리는 데 보내는 🐲도 그랬다. 쌩쌩이는 커녕 1단 뛰기도 열 개를 연달아서 하지 못하던 때, 줄넘기하자는 제안에 긴 실랑이를 하다가 둘이서 줄넘기 하나를 들고 공원에 도착한 적이 있다. 안 할래. 너는 그거 해, 나는 다른 거 할래. 보기만 할래. 나는 줄넘기 원래 안 해. 어지간해서는 고집을 피우지 않는 편이지만 완강하게 고집을 피웠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보다 더 고집이 센 🐲는 1단 뛰기로 100개를 단숨에 채우고는 줄넘기를 건네주었다.

 

뛰면서 점차 꼿꼿해지는 🐲의 등과 빠르게 규칙적으로 움직이는 🐲의 손목을 보며 엄청난 거리감을 느낀 직후였고, 머릿속에는 온갖 걱정이 들끓고 있었다. 나는 저렇게 잘 뛰지 못하는데. 내 모습을 보면서 뭐라고 생각할까. 너무 이상하거나 우스꽝스러우면 어쩌나. 아니, 그럴 것 같은데. 아니나 다를까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미숙하게 깡, 총, 뛰자마자 줄에 걸렸고 세 개인가 다섯 개를 고작 더 뛰고서 다시 발목에 줄이 턱 걸려버렸다. 능숙하고 근사한 모습만 보여 주고 싶은 친구 앞에서 삐걱대고 있자니 당혹스러울 만큼 부끄러웠고, 그래서 자꾸 실없이 웃음이 터졌다. 나보다 웃음과 리액션이 더 큰 🐲는 바닥을 데굴데굴 구르면서 웃고 있는 건 아닐까 싶었다. 

차마 쳐다보지 못하고 있던 얼굴이 웃지 않을 거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는 웃는 대신, 친구가 얼마나 뚝딱이인지 분명 보았겠지만, 오히려 진지한 얼굴을 하고는 어떻게 해야 줄을 넘을 수 있을지 알려 주었다. 안 걸리고 열 개 하는 게 목표야! 그렇게 외치고 처음으로 그걸 훌쩍 넘겨 열다섯 개인가를 해냈을 때는 열다섯 개의 성취를 백오십 개 만큼이나 신난 목소리로 축하해주었다. 여전히 줄넘기를 못한다는 사실은 똑같은데도 그렇게 칭찬해주는 걸 들으니까, 스무 개도 할 수 있었을 것 같은데 아깝다는 말을 들으니까, 이상하게 재도전이 하고 싶어졌다. 정말로 스무 개는 해낼 수 있을 것만 같았고, 그 이상도 해내고 싶어졌다. 

 

이름도 모르는 짝이 오늘 불어넣어 준 용기도 🐲가 내게 건네준 것과 같았다. 내가 작게 외친 용기도 짝의 등과 팔을 충분히 붙들어 주었을까. 짝은 운동을 해본 경험이 없다고 했다. 짝에 관하여 아는 것은 이월 마지막 날인 오늘 함께 움직인 몸뿐이지만, 그가 경험한 몸의 역사와 내가 겪어온 몸의 역사에 비슷한 순간들이 점점이 찍혀 있으리라고 짐작한다. 오늘 몸을 움직인 경험이 사소하지 않은 기억으로 남지 않으리라고 추측한다. 여성 전용 체육관에 방문하는 다른 여성들에게도 유사한 역사가 있을 거라고, 그래서 스플래시 체육관에서 서로 불어넣어 준 용기가 있을 거라고, 코치님으로부터 불어넣어진 열기가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사적인 추론이지만, 결코 틀리지 않을 거라고 믿는다.

 

 

 

 

¹ 

정말 몇 초 정도만 망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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