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를 향해 가는 길
나는, 누군가가 읽을 수 있는 곳에는 사적인 이야기를 적지 않아. 한 번도 해본 적 없던 이야기를 듣고 너는 의외라는 듯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사람에게 액정 너머로 기호나 일상을 쉽게 발신하곤 하는 것을 보아왔기에 그랬으리라. 무슨 책을 읽는지, 어디에 갔는지와 같은 것들은 쉽게 공유하면서도 그 책을 보아 어떤 기분이 들었는지나 그곳에서 무슨 생각을 했는지와 같은 것들은 언제나 기록에서 유보되었다. 그것이 0과 1로 이루어진 세계에서만 해당하는 것은 아니어서, 독서기록장에는 언제나 읽은 책의 정보와 마음에 든 페이지의 숫자가 주로 나열되었지 내밀한 감상과 같은 것은 기록되지 않았다. 이동 경로가 건조하게 나열된 다이어리의 위클리 페이지 역시.
생각해 보면 기록을 유보하는 것은 성인이 되어 시작한 검열이라기보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의 습관이라서, 그때도 내밀한 이야기나 감정은 누가 읽어도 해독할 수 없을 암호문처럼 적히거나 언젠가 적어 두어야지 하는 기약 없는 약속 후에 빠르게 잊혔다. 사월부터 발송되기 시작한 이메일을 읽으며 마음속에서 일기 시작한 욕구에 당혹스러워진 것은 그 욕망이 오래된 역사와 정반대의 방향으로 뻗어 나가는 탓이다. 무슨 기분이 들었는지, 그때엔 어땠고 지금은 어떠한지 가급적 아주 세밀하고 가장 정확한 언어를 사용해서 전하고 싶고, 이해받고 싶으며, 이해하는 얼굴 앞에서 고개를 끄덕이고 싶어졌다. 오래도록 사용하지 않아 온 탓에 낯선 이야기를 하려고 할 때마다 머리와 턱이, 손가락이 얼마나 녹슬었는지를 체감한다. 번번이 망설이고, 자주 검열하며, 수정보다 삭제가 빈번하다.
그래도 이야기를 하고 싶은 마음에는 변함이 없어서, 알코올에 기대어 건조함의 근원에 관한 이야기를 고백했으니 내일은 조금 더 내밀한 이야기를 적을 수 있지 않을까. 언젠가는 낯간지러워하지 않고 자매들에게 더 세세한 이야기를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때 즈음에는 잠든 네 속눈썹이나 찡그린 미간을 별처럼 헤다가 마음이 아득해져서 잠으로 거꾸러지는 대신, 항상 눈을 단단히 맞추어 오는 네 눈동자를 보면서 내가 너를 얼마나 자주 생각하는지 읊어볼 수도 있지 않을까. 예전 같았으면 감정 과잉이라고 자조했을 표현들을 소프트 아이스크림 위의 스프링클처럼 잔뜩 올리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