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영상

사랑하는 여자들

칠월[JULY] 2021. 6. 2. 23:35

 

여성주의를 접하며 가장 먼저 깨달은 것은 부조리였다. 화가 나고 예민해지는 순간들이 종종 있기는 했지만 그래도 아주 엉망진창은 아닌 곳에서 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운이 좋아 살아남았다는 것을 지각하는 순간부터 숨을 쉴 수가 없었다. 들숨과 날숨마다 혐오와 배제가 배어 있었다. 그것을 자각하지 못할 정도로. 시력에 맞는 보조 장치를 드디어 착용한 사람처럼 세계의 부서지고 남루한 곳곳이 눈에 들어왔다. 눈 닿는 곳마다 참담한 기분이 피어오르곤 했지만 그래도 이제야 눈을 제대로 뜨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게 명확해진 것 같았다.

 

다시 눈을 감고 코끼리 다리를 더듬듯이 세계를 살아가지 않기로 한 건 곁에서 눈을 부릅뜨고 있는 다른 여자들 덕택이었다. 여자들 사이에서 생각하고, 말하고, 웃고, 기대는 방법을 새롭게 배우기 시작했다. 어떤 관계는 눈꺼풀을 들어 올리기로 결정한 시점에서 이미 끊어졌고, 어떤 관계는 이제 걸음마를 떼는 아이처럼 서툴게 만들어보기 시작했다. 가부장제를 직시하고 두 다리로 자신의 길을 걷기로 시작한 시점에서부터 많은 시간이 흐르지 않았으므로, 어쩌면 아직은 성장기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관계에서 이따금 발생하는 서투름이나, 그걸 바라볼 때 느끼는 조바심을 향해서는 그렇게 다독여보기도 했다. 이제 걸음마를 떼듯이 모든 관계를 새롭게 정립해나가는 시점이라면, 걸음마를 뗀 이후의 아이들이 이내 달리고, 뛰어오르고, 자전거를 타기 시작하는 것처럼 나도 그럴 수 있다고.

 

하지만 나와 우리는 한 글자 두 글자 이상의 차이가 있어 이따금 머릿속에서 많은 질문이 피어오르곤 했다. 한 사람의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오래 알고 지낸 얼굴도 낯설게 느껴진다. 새살로 덮였지만 약간의 흔적이 남아 있는 상처나 희미한 점 같은 게 비로소 보이기도 하고 전체를 이루는 각각의 눈과 코와 입이 아주 생경해 보이기도 한다. 그런 것처럼 곁에 서 있는 여자들을 바라보고 있으면, 얼굴을 오래 들여다보고 있으면, 정확하게 알 것 같은 것들도 이따금 부예지고 희미해졌다. 내가 당신에게 품고 있던 따뜻하고 다정하고 뭉클하던 게 뭐였을까? 그게 가끔은 남들이 말하는 사랑 같기도 하고 남들이 말하는 우정 같기도 한데, 나는 이걸 뭐라고 말하고 싶은 걸까? 그럼 남들은 그걸 어떻게 그렇게 구분하고 살고 있을까? 그게 명확하게 구분될 수 있는 것이긴 할까? 그게 구분될 수 없는 것이라면 명명한 감정에 기반한 관계란 어떻게 성립되는 걸까? 그걸 부정하고 관계를 세워볼 수 있을까? 알 수 없던 세계에서 아는 세계로 건너온 경험이 있는 만큼, 어떤 질문들은 종종 해답이 갈급해지기도 했고 물음표 속에 서서 먹고 자는 날들은 가끔 외로워지기도 했다. 이 질문들에 뒤채는 게 나뿐일까? 나는 왜 이 질문들 속에 서서 고민하고 있을까? 하고서.

 

아마 사랑하는 여자들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현재도 사랑하는 여자들이 있고, 앞으로도 사랑하는 여자들을 끝없이 만들어가면서 사랑하는 여자로 살기로 선택했으므로 앞으로도 물음표 속에 종종 멈춰 서 있는 날이 있을 것이다. 그래도 이제는 덜 쓸쓸하리라 생각한다. 유사한 질문들을 던지고, 받고, 함께 고민한 <사랑하는 여자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니까. 언젠가 같은 질문 속에 멈춰 설 사랑하는 여자들도 <사랑하는 여자들>을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 속에 혼자 서 있지 않다는 걸 알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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