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9월, 동생들에게
닿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편지는 오랜만이다. 그치. 마지막 편지로부터 얼마나 흘렀는지 셈을 헤아리고 싶었는데 마지막 편지가 언제인지조차 기억이 나질 않아 슬프고 미안한 기분이 들어. 편지 쓰는 게 싫다고, 글씨체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질색팔색을 하고 머리를 쥐어뜯다가 한 문단을 가까스로 채우던 모습이나 편지지와 편지 봉투를 여러 장 사다 놓고 연애편지에 골몰하던 모습들은 떠오르는데. 아무 날도 아닌데 갑자기 편지라니 놀랐겠다. 언니가 무슨 말을 하려나 싶기도 할 테고, 무슨 생각으로 첫머리를 읽었을지도 잘 짐작이 가진 않아. 편한 마음으로 읽어 주었으면 좋겠다.
작년 겨울에, 그러니까 아직은 사람들이 외출 필수품으로 마스크를 챙기지 않던 시절에, 코엑스에서 열린 일러스트페어에 다녀왔어. 몇 번 이야기한 적 있었던 E가 여름인가에 다녀오고 내 생각이 나서 같이 가고 싶다고 이야기를 해주었거든. 가서 돌아보면서 내가 사고 싶은 엽서를 조금 사고, 엽서를 부치고 싶은 사람들을 생각하다 보니 그 사람들이 좋아할 일러스트 앞에서는 또 그 사람들 생각이 되살아나서 몇 장을 집게 되더라. 애기들 몫으로도 엽서를 샀는데, 몰랐지. 이건 엽서에 편지를 적어 건네며 해야 하는데. 참 멋없는 말이 되어버렸다. 연말은 가족과 보내곤 하니까 사서 크리스마스 편지를 적어 주려고 했는데 그만 타이밍을 놓쳐버렸어. 어느새 구월이 되었는지 모를 일이다.
무슨 엽서게. 아마 애기들도 그렇겠지만 어떤 그림이나 사진을 보면 꼭 어떤 사람이 생각나곤 해. 언니 친구 중에서 H 언니는 달이나 파도를 보면 그렇고, 코발트블루나 선이 섬세한 일러스트를 보면 E가 좋아하겠다 싶고……. 이런 이야기를 얼굴을 보며 했더라면 J가 D를 가리키며 대번에 ‘고양이 버스’를 외쳤겠지. 막내 말처럼 토토로에 나오는 고양이 버스를 보면(우리 셋 다 그렇게 부르고 있긴 한데 이게 정식 명칭이 맞긴 한가) D 생각이 나. 하나하나 뜯어보면 아주 꼭 닮은 곳은 없을 텐데 왜일까. 또 아마 이렇게 말하면 J가 왜인지 설명을 길게 해주었겠지. 붉으락푸르락한 D 얼굴도 보이는 것 같다. 뾰로통하게 내밀 입술까지도.
동그란 고양이가 모여 있는 정사각형 엽서를 샀어. 뜬금없지. 뭘 하는 것도 아니고 그냥 동그랗게 모여 있는 동그란 고양이들인데 그 동글동글한 모습이 귀엽더라. 행복하고 신나고 들떠 보였어. 제각각으로 생겼지만 한 사람이 그린 그림답게 비슷한 고양이들에서 우리 얼굴을 봤을까. 셋이서 함께 있을 때 내가 느끼는 기분을 닮아서일 수도 있을 것 같아. 함께 보냈던 시간을 그리워하는 마음도 나도 모르게 담겼을 테고.
한 방에 나란히 누워서 잠들고 너비가 긴 책상에 나란히 앉아 각자 무언가를 깨작깨작 하던 일이 엊그제 같은데, 휴무를 맞아 일주일에 한 번 내려가면 혼자 있는 집이 가끔 너무 고요하게 느껴질 때가 있어. 생각해보면 성인이 된 후로 같이 산 기억은 상대적으로 짧고, 그때는 그 기간이 그렇게 짧을 줄 미처 몰라 더 소중하게 여기지 못했어. 시간이 한참은 더 남아 있을 거로 생각했는데, 요새는 그렇지 않을 것만 같아 자꾸 조바심이 난다. 그러니까 지난달에 놀러 왔을 때 다음 달에도 놀러 오라며 곧바로 약속을 잡고 신신당부를 했겠지. 어기면 안 돼. 이날은 꼭 비워놔야 해. 갑자기 무슨 일 생기기 없기야, 하고서.
최근에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친구 B는 언니만 있어서 이따금 나한테 K-동생으로서 겪었던 설움을 들려주곤 해. 나도 눈물이 없는 편이지만 B는 나보다 더해서, B가 수시로 울었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적지 않게 놀랐어. 유년기가 지금보다 더 무르고 연약한 시절인 건 당연한데도 현재의 모습에 익숙해지면 잊는 일이 이렇게 쉬워서 무섭다. 이야기를 듣던 때는 K-장녀로서의 스스로를 나름 변호했던 것 같은데 돌아서면서 늘어나는 질문들이 많더라. 신체적 폭력은 없었다지만 그래도 내가 정말로 상처를 준 일이 없었을까. 사실 무수히 많겠지. 많아서 이제 어떤 일들은 아무렇지 않은 일이 되기도 했겠지. 토요일에도 실은 D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에 J가 슬쩍 다가와 묻더라.
지금 힘들어?
오전부터 세 시까지 일하고 돌아와서도 네 시부터 여덟 시까지 회의가 이어져 있었던 탓에 어깨에서 힘이 덜 빠져 있었나 봐. 시간을 많이 보낸 B도 이제는 내가 그런 상태가 되면 금세 알아차리곤 내게 넌지시 알려 줘. 해야 하는 게 많거나, 그래서 시간 내 효율성에 골몰하게 되거나, 공적인 영역에서 처리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이 되면 나도 내가 얼마나 딱딱해지는지 알아. 한동안은 그걸 고쳐보려고도 애썼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일정 수준 이상으로 그럴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더라. 그래도 그게 혹시 누군가에게 생채기를 내진 않았나 돌아볼 정도의 여유는 가지려고 의식해. 나는 그 상태를 ‘공적인 모드’라고 말하고, B는 ‘평소보다 상냥할 여력이 없는 상태’라고 부르고, J는 ‘힘든 상태’인지를 확인하곤 해.
이번에도 확인차 묻는 J에게 하루를 어떻게 보냈는지 이야기하면서 기분이 나쁘거나 힘든 건 전혀 아니라고 해명 아닌 해명을 했어. J가 그래도 D가 언니가 그런 상태가 되면 (많이 겪고 봐서 익숙해진) 자신에 비해 힘들어한다고 이야기를 하더라. 그 이야기는 엄마가 말하는, “그래도 동생들이 네 눈치를 많이 본다.”, “동생들이 너를 어려워한다.”는 대목과도 닿아 있겠지. 많이 불편하진 않았을까? 함께 밥을 먹고 보드게임을 하며 그런 분위기는 금방 풀렸지만, 그래도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내가 보인 태도가 혹시나 상처가 되었을까 봐 물어. 응, 하고 대답해도 돼. 그럼 내가 미안해, 한 번만 봐 주라, 할게. 그러면 슬쩍 용서해 주고 다음 달에 또 놀러 와 주면 좋겠다. 그때는 내가 더 상냥할게.
이번에 우리 참 열심히 놀았다. 지난달에 만났을 때도 보드게임을 하고 놀았지만 이번에는 더 오랜 시간 동안 했던 데다가 하고 나서 모두 순식간에 곯아떨어졌으니까 말 다 했지. 그랬는데도 아쉬운 건 왜일까. 1박 2일이 짧다는 생각을 안 해 본 건 아닌데 셋이서 보내는 1박 2일이 항상 너무 터무니없이 짧아. 보내고 나면 항상 이것도 할걸, 저것도 할걸 하는 생각이 난다. 이번에는 둘이 가고 나서 둘 이야기를 더 많이, 더 열심히 듣고 싶다고 생각했어. 같이 영화를 한 편 틀어서 볼걸 하는 생각도 하고. 가족이 다 모이는 밤이면 종종 영화를 틀어 온 가족이 함께 영화를 보곤 했지만 셋이서 보는 건 또 다를 테니까. 적기 시작하니 해 주고 싶은 말도 참 많다. 변명이 되겠지만, 이럴까 싶어 그 조그마한 엽서에 첫 줄을 못 적고 오래 고민하다가 엎어두기를 반복했는가 싶을 정도로.
언니는 요새 여자들이랑 이런저런 것들을 하면서 놀아. 이민경이라는 이름의 작가님이 매주 편지를 보내 주시는 프로젝트 『코로나 시대의 사랑』을 우연히 알게 되어서 편지를 받아보다가, 정확히 뭘 쓰고 싶은지도 모르겠지만 오래 쉬어두고 있던 글쓰기를 다시 시작했어. 여자들이랑. 엄마 이야기도 적고, 보고 들은 이야기도 적고, 옛날 추억도 좀 팔았다가, B와 있었던 일도 적고, 또 그렇게 다른 여자들이 쏟아낸 글들을 읽고, 읽으며 든 생각들을 적고……. 그 사람들과 게임을 해보기도 하고 릴레이로 글을 엮어보기도 했어. 다른 사람들과 정해진 시간에 함께 글을 쓰기도 해 볼 예정이고, 여러 여자와 책도 함께 읽어가려고 해. 우에노 치즈코의 『여자놀이』는 책상에 내내 올려져 있어서 어쩌면 봤을 수도 있겠다. 『살갗 아래』라는 책과 『잃어버린 임금을 찾아서』라는 책도 읽으려고 해. 내일 도서관에서 빌려오려고 예약 신청을 해두었어.
기폭제는 매주 받아 본 편지였겠지만 아마 아주 오래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셋이 어울려 놀던 시절의 일도 있을 거야. 딱히 뭘 하는 게 아니면서도 D가 친구를 만나기 위해 주말에 뽈뽈뽈 밖으로 나가면, 그래서 없으면 괜히 샘이 나던 감각을 아직도 기억해. 학교에 가면 친구들이 있었지만 그래도 현관문을 열고 들어왔을 때 있던 너희 둘이 내게는 자매면서 아주 소중한 친구여서, 그래서 친구들 간에 느낀다는 모종의 질투 같은 감정을 정작 친구들 사이에서는 잘 안 느꼈으면서도 D의 외출에는 그렇게 느꼈던 거 있지. 지나고 나서야 그런 감정이었음을 알았던 것까지도 딱 친구들 사이에서 경험하는 감각과 닮았지.
그때 좀 더 능숙했더라면 좋았을 텐데. 생일이 이른 D와는 사실상 연년생 자매와 같아서, 어린 D를 마찬가지로 어려서 좀 더 따뜻하게 품을 줄 몰랐던 게 해를 거듭할수록 아쉽고 아프다. 좋아하는 걸 같이 하고 싶은 마음을 왜 그렇게밖에 표현하지 못했을까. 나와 타인의 구분이 어려운 시기기도 했지만, 같은 시간을 많이 보냈고 서로 닮은 우리가 다르다는 걸 이해하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렸지. 『끝없는 이야기』나 『나니아 연대기』를 읽으라고 강요하는 게 아니라 그걸 읽고 너무 재밌고 행복해서 애기들 생각이 나더라는 말을 했야 했는데. 전혀 다른 취향의 영화나 소설을 읽고 들뜬 얼굴을 봤을 때도 더 귀 기울여 들었어야 했는데.
비슷한 직군에 있는 사람이 직업을 가리켜 ‘사람을 사랑해야 할 수 있는 일’이라고 했다던데, 그 말에 동의하면서도 나는 정작 내가 더 사랑을 표현해야 했던 사람들에게 그러지 못한 것 같아 미안함이 커. 사랑하지 않아도 될 사람을 오래 사랑했던 것들도. 둘 다 사랑을 제대로 표현하지도 못했던 시절부터 내게 큰 사랑을 주고,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지를 알려 준 사람이라서, 준 사랑보다는 주지 못한 것들이 항상 아쉽다. 그래도 앞으로 있을 시간 동안에는 언니가 더 잘할게. 자신의 예민함을 견뎌내지 못해서 살얼음장 위를 걷는 사람 같던 이전에 비하면 그래도 몇 해 전부터는 꽤 말랑해졌잖아. 그렇잖아. 그러니까 또 둘 다 이제는 코어가 아주 조금은 생겼다고 말하는 나한테 “배에 힘줘 봐.” 하고서는 계속 말랑해서 도무지 근육을 찾지 못하는 것처럼 배를 주물러 댔을 테고. 아니, 쓰고 나니 분하네. 나 진짜 예전보다는 코어 생겼거든. 진짠데=_=. 두고 보자.
애기들이, 내가 엄마와 함께 이 세상에서 제일 처음으로 사랑한 여자들이라는 사실을 항상 기억해 주었으면 해. 필통에 몰래 편지를 접어 숨겨두던 때도 그랬지만 그전에도, 그 이후로도 항상 그랬어. 그러니까 더 편하게 시시콜콜한 이야기들을 해 줘. 매달 하루씩은 바쁘더라도 시간 좀 내 줘. 사랑한다는 말을 해주고 싶어서 그래.
20. 09. 14.
애기들이 간 다음날에, 미처 못한 말들이 생각난 언니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