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지난 이야기(2020)

콘서트에 다녀왔습니다

칠월[JULY] 2021. 2. 22. 23:09

콘서트에 다녀왔습니다. 두 시간 정도 진행되었던 것 같은데 사실은 세 시간이었을 수도 있겠어요. 콘서트에 다녀온 경험이라곤 한 번뿐이어서 이번에도 첫 곡이 시작할 때는 손뼉도 치지 못하고 가만히 듣고 있었는데, 끝날 때는 고개와 손을 같이 끄덕거리면서 마이크가 이쪽을 향해 돌려질 때면 짧은 구간을 따라부르기도 했습니다. 코로나 시대에 이게 웬 말인가 싶으시겠지만 걱정하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 생활 방역 안전 수칙을 준수하여 방구석에서 열렸거든요. 정확하게는 제 방 침대 위에서 열렸습니다. 가수와 관객이 각각 한 명씩으로만 구성된 콘서트였어요.

음악 이야기를 잠깐 먼저 할까요. 저는 재생 목록을 몇 달에 한 번 업데이트 할까 말까 하고, 노래를 듣는 날도 한 달을 기준으로 세었을 때 한 손이나 두 손이면 충분해요. 그것도 대개는 쏟아지는 잠을 막기 위해서라든가, 일이나 글을 해치워야 하는데 집중이 잘 안 되어서라든가, 특정 노래를 들으면 되살아나는 기억이나 감정을 되새기고 싶어졌을 때처럼 목적이 분명한 행동으로 수행됩니다. 음악 자체가 목적이 되는 경우는 잘 없어요. 그러니 제가 보내는 일상은 생활 소음을 제외하고는 고요한 상태에 잠겨 있고, 그걸 가장 편안한 디폴트값으로 삼아요.

그런 만큼 노래를 부르는 일은 노래를 듣는 빈도보다 더 드물어요. 자발적으로 노래를 불렀던 기억을 떠올려 보면 생각나는 건, 혼자서 집 청소를 마치고는 섬유유연제 냄새를 맡으며 와인을 반병 비웠던 날이나 한적한 산책로 위에 끼얹어진 햇빛을 첨벙첨벙 밟으며 걷던 날. 기분이 좋아 작게 노래를 흥얼거렸던 게 생각나는데, 날짜를 셈해 보면 몇 달이나 몇 해는 가볍게 건너뛰어요. 와인을 마시던 날에는 그래도 오랫동안 좋아해 온 노래를 불렀던 것 같은데 산책로를 걷던 날에는 오래전 음악 시간에 배운 가곡을 흥얼거렸어요. 생각해보면 아주 밝은 노래도 아니고, 오히려 서글픈 노래에 가까운데 이상하게 기분 좋게 산책할 때면 이따금 생각이 납니다.

길게 설명한 것처럼 노래를 드물게 듣고 거의 부르지 않으면서도, 다른 사람이 노래를 따라 부르는 소리는 정말로 좋아해요. 정말로. 두 번 강조해도 충분하지 않다고 느껴질 만큼 좋아해요. 반주에 맞추어 능숙한 보컬이 부르는 노래도 좋지만, 그렇게 녹음된 소리를 따라 부르는 목소리가 좋아요. 녹음된 소리와 따라 부르는 목소리 사이의 미묘한 차이가 좋고, 보통 그렇게 노래를 따라 부르는 건 흘러나오고 있는 그 노래를 좋아하거나 노래를 따라 부를 만큼 기분이 좋거나 한 상태니까, 따라 부르는 목소리에 실려 있는 그 감정이 좋아요. 노래방에 앉아 기계에서 흘러나오는 반주에 맞추어 부르는 것과 달리 노래를 따라 부르는 목소리는 노래 중간부터 예고 없이 흘러나오기도 하고, 중단되었다가 또 제멋대로 시작되기도 하는데 그 예측할 수 없는 자연스러움도 좋아하고요. 기술적으로 넣는 화음과 달리 흐르는 노래를 따라가면서도 자기 목소리에 초점을 맞추어 부르는 소리 속에서 들리는 목소리가 좋아요. 사람마다 다르지만 그건 그 사람이 의식적으로 노래할 때 내는 소리보다 평상시 말하는 목소리를 훨씬 많이 닮았으면서도 또 말하는 목소리와는 아주 같지 않거든요. 세세한 이유 중에서도 노래를 따라 부르는 노랫소리를 좋아하는 가장 큰 이유는 (물론 누가 ‘듣든 말든’ 노래를 부르는 사람도 있겠지만) 같은 노래를 들으면서 그걸 따라 부르는 사람과 그걸 천천히 듣고 있는 제가 내밀하고 다정한 관계 안에 있기 때문이겠지만요.

다시 콘서트 날로 돌아갈까요. 새벽 세 시. 저는 잘 시간을 맞았고, B는 한창 열중하고 있는 게임에서의 리셋 시간을 맞았습니다. 무슨 이야기를 하다가 첫 노래를 틀었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여기까지 쓰고 B에게 급히 메시지를 보내 물어보니 B가 게임 화면을 바라보며 흥얼거린 노래가 도화선이었다고 합니다. “잠 와?”, “졸려?” 침대 위에 태블릿을 올려놓은 채 바닥에 앉아 던져대던 B의 물음표에 연신 “아니?”를 외치면서도 머리가 그만 베개에 닿아버린 탓에, 나른해진 상태로 B의 흥얼거림을 들었던 게 이제 기억나요. 수면에 복사뼈 즈음까지 담근 상태에서 이불은 목 아래까지 끌어올려져 있었고, 에어컨으로 차갑게 식은 공기가 선풍기에 떠밀려 머리카락 끄트머리를 만지작거리고 있어서 행복감이 머리끝까지 차오르는 걸 느끼고 있었어요. 기분 좋다. 그렇게 말하고 B가 흥얼거린 노래와 관련된 노래들을 잠깐 이야기하다가, 며칠 전에 함께 들었던 보아의 발렌티를 다음 재생 곡으로 신청했는데…….

어느새 정신을 차리고 보니 “아이씨, 안 되겠어.”라고 말하며 침대 위로 올라와 엎드린 B가 선곡표를 만들고 있었습니다. 둘 다 이제는 듣지 않지만 서로 다른 나이로 스쳐 지나온 시대를 뒤집어놓았던 후크송을 듣다가, B의 노래방 18번을 틀었다가, B의 또 다른 노래방 18번을 틀었다가, “도대체 18번이 몇 개야?”하고 묻는 말에 천연덕스럽게 돌아오던 “1번부터 18번까지 다 18번이지.”소리에 웃었다가, 그다음 신청 곡을 넣었어요. 방구석, 아니 방침대 눕콘이었는데도 B는 상반신의 움직임만으로도 칼군무를 추고 있는 아이돌이 되었다가 소몰이꾼이 되었다가 본 헤이러가 되었다가 심지어는 오토튠 그 자체가 되었다가 했습니다. 음성 증거를 제출하지 못해 증명할 수는 없지만 정말이에요. 신빙성을 높일 수 있는 이야기를 하나 하자면, 자빱TV배 성대모사 대회에서 B는 마젤토브의 기계음을 완전히 소화한 이력이 있습니다.

 

 

오늘은 무대에 섰지만, B는 이따금 자신이 다녀온 콘서트 영상이나 자신이 좋아하는 콘서트 영상들을 틀어주고 함께 관객석에 앉기도 합니다. 늦은 밤에 전등을 모두 끄고 저는 침대에, B는 침대에 등을 기대고 바닥에 앉아 B가 흔드는 손을 3D 효과처럼 보던 날도 있었습니다. 새소년을 처음 알려준 것도 B였어요. 사람들이 새소년 이야기를 엄청 많이 해. 그렇게 이야기했을 때 B는 곧장 “이거 안 봤단 말이야?”라고 말하며 렛츠락 페스티벌에서 피크를 입에 문 채 기타를 연주하는 황소윤 영상을 보여주었어요. 저는 보고 나서 격양된 목소리로 감상을 쏟아냈고요. 여름날 B의 집에서는 둘 다 바닥에 머리꼭지를 맞대고 누워 밴드 음악을 들었습니다. 그게 작년의 일인데, 올해는 작년의 일을 재현하듯이 같은 음악을 틀었으니, 어쩌면 내년에도 그렇게 같은 노래를 듣겠지요.

 

 

B와 J와 매일 새벽 떠들던 때부터 차츰차츰 변해온 플레이리스트는 이제 B와 E와 H언니가 알려준 노래들로 제법 길어졌습니다. 노래 좀 줘 봐. 하고 플레이리스트를 띄운 휴대전화를 손에 넘겨줄 정도로 제 뻔뻔함도 많이 늘었고요. 그럴 때면 모두 자신이 최근에 새롭게 알게 된 노래나 아니면 오래전부터 좋아하던 노래들을 채워주곤 해요. 노래를 잘 듣지 않고 살아온 탓에 “아니, 이것도 안 들어봤단 말이야?” 하는 놀라움을 종종 사기도 하지만 (생각해보니 E는 이제 더는 놀라지 않아 “그럴 것 같았어”라고 이야기하며 웃고, B는 놀라움이라기보다 놀릴 뿐입니다) 그만큼 듣는 즐거움이 늘었습니다. 노래에 관한 취향도 선명해졌어요. 그중에서도 특히 좋아해서 하트를 눌러 둔 노래도 많이 늘었고요.

 

그래도 아직은 노래를 따라 부르는 목소리를 가장 좋아해요. 이건 한동안 변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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