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지난 이야기(2020)

잠든 B를 두고 주방으로 가는 길

칠월[JULY] 2021. 2. 22. 22:48

“청강 와.”

 

수강 신청에 관해서 묻던 때였을까, 아니면 수강 신청은 이미 끝났고 언제 B의 집에 또 놀러 올 수 있을지 물어보려고 시간표를 보여 달라고 했던 때였을까. 기억 속에서는 날짜도 아득하게 잊혀서 칠월이나 팔월 즈음이겠거니 하는 추측만 남았다. B는 휴학을 마치고 학사 과정의 8학기 중 남은 두 학기를 구월부터 다시 시작하려는 즈음이었고, 나는…….

 

“그래.”

 

석사 과정도 이미 2년 전에 마친 상태였다.

하지만 그런 것치고는 고민도 없이 대답이 먼저 툭 튀어 나갔다.

 

나인 투 식스로 주 5일제 근무를 성실하게 이행하는 대신 정오가 넘어서야 생활을 시작하는 프리랜서의 일과에 있어 열두 시 수업이 얼마나 이른 시각인지는 개강 2주 차, 그러니까 청강(내지 도강) 1주 차부터 느낄 수 있었다. 열두 시 수업을 들으러 가려면 집에서 열한 시에는 나가야 한다. 탈코르셋 이후로 준비 시간을 대폭 줄이긴 했으나 그래도 샤워를 비롯해 삼십 분가량은 소요하곤 했으니 삼십 분 정도는 더 빼야 했다. 화장실은 하나고 사람은 둘이니 열 시에 일어나야 할 것 같기도 했다. 평소보다 두 시간은 빨리 일어나야 하는 셈이었다.

 

계산식이 틀린 것은 개강 3주 차에 알았다. 열 시 반에 일어나 B를 깨워 함께 학교로 이동하고 나서, B가 열두 시부터 세 시까지 이어지는 수업 동안 잘 챙겨봐야 빵 한 봉지를 먹고 세 시부터 여섯 시까지 이어지는 수업을 듣는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먹는 일로부터 느끼는 즐거움이 적고 혼자 있을 때면 허기도 잘 느끼지 않는 나와 달리 B는 배가 든든한 정도에 비례해서 얼굴이 환해졌다가 새하얗게 어두워지는 사람이었다. 나는 공복 상태의 B를 가리켜 ‘절전모드’나 ‘최대절전모드’라고 말하곤 했고, 그럴 때의 B는 희미하게 웃거나 웃음기도 없이 고개를 푹 끄덕이곤 했다. 평소에는 한시도 가만히 있는 법이 없으면서.

 

그 많던 아침잠은 누가 다 먹었을까. 아마도 더 놀고 싶다면서 새벽 두 시는 가뿐히 넘겨서야 잠드는 B가 범인일 것이다. B가 이케아 출신의 인형들 사이에서 미동도 없이 내 몫의 아침잠을 꼭꼭 씹어 삼키는 동안, 나는 자는 B를 두고 매트리스에서 슬그머니 일어나 B의 주방에 섰다. 일곱 시의 주방에서 오랫동안 요리를 손에서 놓아두었던 내가 달그락대고 부스럭거리는 동안 B는 이따금 눈을 반쯤 뜬 채 “뭐해……?”하고 물었고 대개는 눈을 뜨려다 말고 다시 까무룩 수면 아래로 잠겼다. 서로를 ‘친구야’라고 부르곤 해서 이름을 부른 적이 없었음을, 잠든 B를 깨워 상 앞에 앉히던 날에 깨달았다. 

 

이름을 부르는 소리에 깬 B가 부스스 테이블 근처로 다가오면, 어느 날은 계란과 베이컨과 빵이 놓여 있었고, 어느 날에는 김치볶음밥이나 닭볶음탕이 올라왔고, 어느 날에는 (실패한) 파스타가 등장하기도 했다. B는 (덩어리가 채 풀리지 않은 치킨 스톡을 입 안에서 터뜨린 날을 빼고는) 불만 없이 맛있게 한 그릇을 비워내곤 했다. 전날 더 늦게 잠들었는지 유독 일어나기를 힘들어하던 날에도 더 자게 놔둘 걸 그랬느냐는 질문에 B는“나는 잠보다는 밥이야.”라고 말하며 젓가락을 꼭 쥐었다. 밥보다는 잠이 간절해 보였는데도. B는 상 앞에서 요란스럽게 칭찬을 늘어놓는 일은 없었지만, 그런 게 없어도 나는 절전 모드인 B가 최대한의 밝기로 건네는 칭찬을 알아볼 수 있었다. 때 이른 감기로 앓아눕기 전까지 한 달간 아침밥 챙겨주기에 개근 도장을 찍을 수 있었던 건 그 칭찬 때문이었을 것이다. 

 

우리가 함께 장마를 볼 수도 있겠습니다. 늦가을에 처음 만난 B와 겨울을 함께 보내고 봄을 맞이하던 즈음에 알았던 시집의 이름이 유독 머릿속에 맴돌던 때가 있었다. 이민경 작가님 표현을 빌자면 ‘그렇게 편지를 써’대던 와중에 한 차례 제목을 끌어다 인용하고도 본문을 읽은 것은 B와 함께 장마를 보고, 다시 가을이 오고, 잠든 B의 주방에서 매달 화요일마다 아침밥을 차린 후의 일이었다. 다정한 시집이었으나 해설이 더 깊게 남은 것은 또 어김없이 그게 B와 나의 관계에 관련되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어떤 텍스트도 자신의 세계와 관련성을 지니기 전까지는 의미를 갖지 못하므로. 

 

해설은 이름 없이 한 철학자의 말을 빌려 이렇게 말했다. 우리에게 몸 밖의 모든 것은 불확실하고 위험한 바깥 세계의 것이며, 그리하여 음식을 먹는 일은 우리의 몸 안으로 외부의 실재를 집어넣는 일이라고. 그러니 누군가를 위해 음식을 만드는 일은 ‘이건 안전해.’라고 자신이 미리 확인한 안전한 세계를 상대의 입 안에 넣어 주는 일이라고.

 

코로나 시대의 B는 더는 학교에 가지 않고, 나는 내 몫만큼 쪼개어 B의 입 안에 넣어 주었던 아침잠을 B의 학교에서 나의 직장에 이르는 버스 안에서 허겁지겁 채우는 대신 B의 곁에서 느긋하게 잔다. 한 달간 일곱 시에 일어나는 게 어떻게 가능했지? 불과 몇 달 전의 일이 불가사의하게 느껴질 정도로 나태해진다. 그러면서도 이따금 아침에 일어나서 잠든 B를 두고 B의 주방이나 나의 주방에 선다. 나의 주방에 설 때면 아침부터 창문을 활짝 열고 B가 좋아하는 고기를 굽는다. 고기를 구운 지 얼마 되지 않은 날이거나 B의 집에서 잠든 날이면 배달 애플리케이션의 메뉴들을 요리할 때보다 더 분주하게 오가며 무엇을 먹일지 골몰한다. 충전이 덜 되어 칭찬 다이오드에 불빛이 들어오지 않을 때면 맛있게 됐는지, 입에 맞는지 물어볼 정도의 뻔뻔함도 생겼다. 여전히 치킨 스톡, 네 글자와 마주할 때마다 B는 웃고, 나는 민망해하지만, 언젠가는 치킨 스톡을 넣고(서도) 근사한 파스타를 해주리라는 야심도 B 몰래 음모처럼 간직해둔다. ‘이건 (이번에는 정말로) 안전해’ 즈음 될 내 얼굴 앞에서 B는 웃거나 한두 마디를 얹으면서도 젓가락을 꼭 쥘 것이다. 나는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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